※ [스크데카] 두 번째 ■■ 시점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
※ 도서광님(@punchpunchflame)의 데카를 납치했습니다.
"스크릭."
"응? 왜 그러지?"
오랜만의 워커스 하이에서의 식사, 오랜만의 데이트. 장거리 연애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굳이 따지자면 비둘기같은 연애려나? 데카라는 집으로 스크릭이라는 비둘기가 돌아온다. 그리 생각하니 간질거린다. 스크릭은 이 고양감을 한껏 느끼며 식사를 계속하려고 했다.
"당신, 초록빛으로도 빛날 수 있었군요?"
끼익- 나이프가 접시의 빈 부분을 긁는다. 스크릭은 데카를 바라본다. 조금 멍한 눈. 가슴 속의 무언가가 철렁 내려앉는다. 스크릭은 식기를 떨어뜨리듯이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게."
"스크릭?"
"미안해."
언제나의 화려한 연출조차 생략하고, 데카의 눈 앞에서 스크릭이 한 순간에 소리없이 사라졌다.
정신없이 단장실로 돌아온 스크릭은 보이는 아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그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였다. 데카가 타기 시작했다. 지금껏 만나온 시간을 따지자면, 데카는 정말로 오래버텨주었다. 스크릭은 마른 세수를 했다. 제 사랑을 제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목표는 제 불꽃에 의해 허망하게 타버렸다. 떠나기 전의 인사는 안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이상으로 태울수는 없다. 아아, 그래도 꿈에서 정도라면......상대에 대한 무례라는 것은 알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그래, 공연이 끝나고, 네가 잠들때 즈음, 꿈 속에서라도 너에게.......
"계십니까-"
단장실의 천막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계십니까-"
다시 한번 목소리가 저를 부른다. 응답을 해줄때까지 부를 심산이군. 스크릭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입구의 천막을 거두었다. 웃는 남자가 그곳에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스크릭도 그를 안다. 저와 같은 별종이고, 종종 마주치는 사이이긴했다. 이름없는 행상인. 누군가는 그를 늙은 닉이라 불렀고, 에리크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상인이라는 그 자체의 이름을 댄다.
"......무슨 일이지, 페들러."
"이런, 기분이 안좋을때 방문드렸나 보군요."
"보다 싶이 말이야. 판매 영업이라면 공연이 끝난 후에 와주겠나? 지금은 내가......."
"화상치료제, 필요하시지 않나요?"
스크릭의 몸이 굳는다. 웃는 행상인이 그를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다. 어떻게 안거지? 스크릭이 노려보자 그는 아무런 악의가 없다듯이 두손을 흔들어 펼쳐보이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영업을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고객님께 괜한 피로를 더해드리지 않을까 걱정은 되는 군요."
"......들어와."
스크릭은 마지못해 그를 안으로 들였다. 대충 아무 의자를 가리킨 뒤, 의자를 끌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인은 손끝을 모아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의도하고 엿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침 저도 그 가게에 볼일이 있었다가 정말로 우연히 그 현장을 봐버린거랍니다."
"말은 잘하는군."
"정말이랍니다, 최근 새를 하나 키우고 있어서요. 그 새와 식사를 하러 정말로 우연히 방문을 한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지요. 고객님의 연인분과 제 새가 서로 아는 사이더군요."
"본론을 말해."
저보다 더한 이 수다쟁이의 이야기를 일일이 다 들어주고 있으면 끝도 없다. 상인의 양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래서 그 새가 제게 지저귀더군요. 고객님의 연인분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요. 저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머리속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지 말입니다. 고객님의 연인분의 화상을 가라 앉힐 수 있는 아주 기가막히는 약의 아이디어 말입니다."
행상인은 곧 제 옆의 트렁크를 열더니, 장갑을 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트렁크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푸른 빛을 띄는 유리병이었다. 공연 연출 때 쓰는 드라이아이스의 연기처럼, 차가운 연기가 나고 있었다.
"소개드리죠, <서리여왕의 입맞춤>이라는 제품입니다."
그 작은 유리병에서 나는 한기는 스크릭 마저 서늘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서늘함과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범상치 않음에 스크릭이 되물었다.
"......서리여왕? 동화에나 나오는 그 서리여왕을 말하는 건가?"
"예, 애들 동화 속의 그 서리여왕말입니다. 실은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말이죠. 저의 오랜 단골분이랍니다."
서리여왕에 대한 이야기라면 스크릭도 들어본적 있다. 자신보다 훨씬 오래된 동포로, 온갖 세계를 상대로 겨울전쟁이라 불린 전쟁을 일으킨 무시무시한 동포. 구제나 시련이라는 명목도 없이 그저 자신을 채울 온기를 갈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눈과 얼음으로 뒤덮고 다녔던 제정신 아닌 괴물. 몇백년전에 갑작스럽게 잠적한 이유로 별다른 소식을 못들었는데,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던건가.
트렁크를 닫은 행상인은 조심스럽게 스크릭의 앞에 유리병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한기는 어마 무시했다. 추위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한 스크릭마저 등골이 오싹해질정도의 서늘한 한기였다.
"서리여왕의 입맞춤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녀에게 입맞춤을 받으면 모든 의지와 감정을 잃고 그녀의 것이 된다는 이야기 말이죠. 이것은 그 입맞춤을 희석한겁니다. 이걸 연인분의 이마에 한방울 떨어뜨리시면 됩니다. 딱 한방울이면 충분합니다. 희석하긴 했지만, 동포가 아닌 자들에게는 워낙에 강력해서요."
"그렇다는 건 부작용도 있다는 거겠군."
"물론 있지요. 이것을 떨어뜨리는 순간, 연인분께서 고객님께 갖던 모든 마음이 식을겁니다. 화상을 입기 이전에 가졌던 모든 마음이요. 아, 기억은 물론 있습니다. 다만 감정이 식을 뿐이지요."
스크릭은 입을 다물고 한기가 흘러나오는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저로 인해 입은 화상을 치료하는 대신에, 그 이전에 갖던 모든 애정과 호감을 없었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인가. 저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데카를 볼 다른 방법은 있다. 꿈이라면 제 체질이 더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꿈이라면 손을 잡고 입도 맞출 수 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대가는 뭐지?"
"오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하게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예상외로 싼 대가에 스크릭이 날선 눈으로 웃는 남자를 바라본다. 상인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최근 새를 하나 키우고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실은 그 새의 스트레스 관리가 좀 필요한데, 무엇을 해줄까하다가 서커스 공연이라도 보면 기분이 나아질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겸사겸사 저치들의 스트레스 관리법도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치들은 너무 쉽게 부서져서, 관리하는 게 저로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더군요."
"우리 서커스의 단원들은 내 가족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삼가해줬으면 좋겠군."
"이런, 실언을 했군요. 불쾌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래서, 거래하시겠나요?"
한기를 내뿜는 작은 유리병을 본다. 기억은 있지만 감정은 없었던게 된다. 데카는 언제나 말했다. 자신의 감정이 스크릭과 같은 무게의 감정은 아닐 것이라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두 번이나 고백해봤는데, 세번이라고 또 못할건 뭐가 있나?
스크릭은 유리병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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