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적으로 이 글 이후이지만 드관글인 관계로 정사는 아닙니다. if의 느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샤메님(@syamesama)의 드림주인 카시티브를 빌려왔습니다. 드주 해석이 부족해서 캐릭터 붕괴가 있을수 있는점 미리 사죄드립니다.
카시티브는 제 손에 들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 자의 서커스에 '서리'가 합류해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다. 벌레등을 구속한 지부의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먼 옛날의 겨울 전쟁과 같이 그녀는 모든 것을 얼려두고 벌레등과 함께 유유히 떠났다.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마음에 들법한 전사를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는 점.
차를 우리기 위한 물이 끓자 카시티브는 찻주전자에 익숙한 동작으로 뜨거운 물을 담았다. 서리의 힘은 모든 것을 얼린다. 감정, 이성, 의지는 물론이고 생명 그자체를 그대로 얼릴 수도 있었다. 삶도 없이, 죽음도 없이, 마치 박제라도 하는 듯한 동결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타이머가 울린다. 카시티브는 물을 끓였던 물주전자에 남아있던 물을 빈 찻잔에 약간 부은 후, 찻잔의 뚜껑을 덮어 흔들어 잔을 뎁혔다. 뎁힌 물을 버리고, 우린 차를 찻잔에 부었다. 소매를 단정히 정리하며 차를 입에 머금었다. 현장에 카시티브가 도착했을 때 느꼈던 한기는 매서웠다. 그들의 영혼을 녹여 인도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톡톡-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다도 시간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카시티브는 창문을 열었다. 그때보다 작아진 모습이, 달을 등지고 서있었다.
"안녕."
"......방문을 할것이라면 사전에 약속을 잡고하거라."
"약속을 잡고 싶어도 연락처가 없는걸. 그러니 봐줘."
카시티브가 창가에서 물러나자,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휙 하고 창문 위에 걸터 앉는다. 낡은 츄리닝 바지에 <점프쿨이 돌았는데 딸피인게 중요하냐>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장이 쓰인 티셔츠, 신발은 슬리퍼. 방문에 대한 예절이라는 것이 없다.
"아, 좋은 향난다. 차 마시던 중?"
"이녁의 찻잔은 없다."
"체엣."
카시티브는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금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모처럼의 좋은 향이 저 무뢰배가 연 창문으로 날아간다.
"해서, 무슨일이느냐."
무뢰배의 표정이 굳었다. 차가운 한기가 날카롭게 말한다.
"선빵친건 그쪽이었어."
"그것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야말로 뭇 사람들을 위협하는 행위라고는 못 느끼느냐?"
"지레 겁먹어서 붙잡아 자극한건 선빵이 아니고?"
공기중에 온기와 한기가 부딪힌다. 한기가 입을 열었다.
"6호가 알려주었어. 쓸데없이 자극한 탓에 자칫하면 튀어나올뻔했데."
찻잔이 쟁반위로 내려졌다. 역시 그랬던건가. 보고서를 봤을 때 짐작은 했다. 그들은 불리할것 같아 보이는 부분은 거짓말을 하는 어린아이 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카시티브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서리와 벌레등. 힘으로 따지자면 서리쪽이 위이긴하지만 성가진 쪽으로 따지자면 벌레등이 위다. 서리의 본질은 얼리는 것이다. 언 것은 열기를 쬐면 언젠가는 녹는다. 아니면 빼앗아 취했던 온기를 다시 돌려준다면, 생명은 다시 긴 겨울을 깨고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 벌레등에게 태워진것은 아니다. 불태워진 순간 꼼짝없이 그 불꽃에 귀속된다. 그것은 본인조차 원치 않는 강력한 귀속능력이었다. 카시티브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타이밍 좋게 내가 난입해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당신의 인도조차 받지 못했을 뻔했다고."
"......그 점은 여가 단단히 일러두마."
협력관계이지만, 미숙하고 어리기에 생각이 짧을 때가 많다. 할 일이 하나 늘었다.
"전할말은 그것이 다인가?"
"전달사항은 끝.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문답인데 어울려줄래?"
"거절하마."
"거절은 거절할게."
모처럼의 다도 시간을 안좋은 소식으로 방해받은 것도 모자라 별 쓰잘데기 없을 것 같은 문답까지 해야한다니. 카시티브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조용히 식은 찻잔을 비우고, 따뜻한 새 차를 따랐다. 향기로운 향에 슈네는 카시티브를 졸랐다.
"역시 나도 한잔 주면 안돼?"
"이 방에 손님용 찻잔은 없다."
"체엣-"
슈네는 힐끗 카시티브의 뒤를 바라보았다. 찬장에 엎어진 찻잔이 하나 있다. 먼지하나 없지만, 쓰지않는 찻잔. 손님용은 없다고 했으니 아마 스크릭에게 먹혀버린 남편이라는 존재의 것일거다. 슈네는 시선을 돌리고는 턱을 괸채 하고 싶은 질문을 뱉었다.
"있지,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촛농으로 만들어진 가면 너머의 불꽃이 느릿하게 깜빡거린다.
"......요즘의 전자오락이란 것은 이녁에게 생각이란 것을 가르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나보구나."
"우와, 말 너무 심하네."
"그렇다면 철학자라도 되고 싶어졌느냐? 배움의 터를 찾아가거라. 여가 얼마든지 후원을 해줄테니."
"저기, 나는 문답을 하자고 했지 일방적인 디스를 하라고 안했거든? 아, 좀 들어봐."
사정없는 디스에 속이 쓰린 저와는 다르게 귀부인은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제 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디한번 말해보라는 눈빛이었다.
"우리조차 우리를 동포라는 이름으로 모호하게 묶고 있긴하지만, 나나 스크릭은 당신과 달라. 근본적인 탄생 이유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강을 안전히 가로지르기 위해 강을 비추는 촛불. 삶과 죽음이라는 이치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에 의해 탄생된 존재. 그것이 카시티브란 존재였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나 스크릭과는 달랐다. 자신과 스크릭은 어느쪽이냐면 세계가 낳은 이치 없는 자연적인 괴물이었다. 프로그램으로 따지자면, 의도치 않은 악성 버그라고 비유하는게 좋을까.
"허나 그 탄생 이유가 다르다고 하여 이녁들이 날뛸 이유가 되지 않는다."
카시티브가 차를 음미하고는 단정히 찻잔을 든 상태로 입을 반문했다. 슈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날뛴다니 너무하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데 이유가 있어?"
"스스로를 포식자라 칭하는 것인가."
"틀린말은 아니잖아? 카시티브, 나는 온기가 없으면 안돼. 그것을 갈망하는 것은 내 본질이고,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야. 지금이야 운이 좋게 그것을 취할 다른 수단을 찾아서 당신이 싫어할법한 일들을 더는 벌이지 않게 된거지, 내 이빨과 발톱을 뽑았다고 한적은 없어. 나는 그정도까지 나를 부정하지 않아."
찻잔이 쟁반위로 내려진다. 슈네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젠가 당신이 그런적이 있지. 저지른 죄악을 외면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나는 그것을 죄악이라고 생각안해. 당연한 포식행위였지. 그러니까 죄책감도 안느껴."
".......하지만 이녁은 그 전쟁을 돌연 끝냈지."
수없이 많은 세계를 겨울로 뒤덮던 겨울전쟁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끝났다. 서리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멈추고 돌연 잠적했고, 다시 만났을 때는 지금처럼 보기 힘든 꼴이 되어 돌아왔다. 카시티브가 아는 것은 그뿐이다. 그 과정을 카시티브는 따로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슈네는 잠시 제 뒷편의 붉은 달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걸 끝냈던건 정말 단순한 이유였어. 마음에 들었던 게 있었는데, 그게 점점 나때문에 망가져 갔어. 그게 마음에 안들었어."
슈네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랜된 기억 속에서 합을 맞출때마다, 점점 식어가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매번 죽은 동료를 위해 남몰래 눈물흘리던 자가, 어느 날 더는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것을 깨닫고 괴로워하지조차 못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카시티브의 검지가 쟁반을 신경질적으로 작게 두들겼다.
"해괴망측하기 그지 없구나. 마음에 든 것만을 신경쓰고 그렇지 아니한 것들은 포식해도 되는 것이느냐?"
"그래서 내가 괴물이라는 거야 카시티브."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바람이 불어왔고, 버들나무잎이 일제히 서로 부딪히며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은 선언으로 들리기도 했다.
"인류는 운좋게 나를 길들였어.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 싸워줄 의향도 있어. 하지만 내 본질은 괴물이야.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아. 해서도 안되고. 하지만 스크릭은, 그 바보는 나랑도 또 다르더라고."
신경질적으로 쟁반을 두들기던 손가락이 멈춘다. 슈네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괴물인 주제에, 어중간한 인간성을 갖췄어. 그래서는 안되는데 말이야."
비난인걸까, 아니면 안타까움인걸까. 카시티브는 조용히 슈네를 마주 바라보았다. 시선 사이에서 온기와 한기가 뒤섞였다. 이번에는 온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녁의 말대로, 차라리 그것이 온전한 괴물이기를 바랄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깟 연구따위 안해도 되었을 텐데. 인도니 뭐니 다 내팽겨치고, 오로지 님을 위해 불탈 수 있었을 터인데.
가면의 촛농이 한방울 툭, 쟁반위로 떨어졌다. 그것을 탄생시킨 세상은 무정하게도 그것에게 인간성을 주어버리고 말았다. 그 인과는 가혹하게도 님의 연구를 이어받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허나, 그것은 사람의 옷을 입기를 택했다."
일렁이는 불꽃이 얼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여의 님도 그것을 돕기로 했다."
꺼질일 없는 온기가 전해져온다. 슈네는 잠시 그 온기를 피부로 느끼고는 곧 크게 한숨을 내쉬웠다.
"......새삼스러운데, 그 녀석, 진짜 전방위로 민폐끼치는 솜씨가 장난아니구나."
"이제야 깨달았느냐?"
"알고는 있었는데 새삼스럽긴 하네."
슈네는 어깨를 으쓱여보이더니 몸을 돌렸다. 슬슬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창밖으로 뛰어내리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깜빡한게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그 차 이름 뭐야? 향 진짜 좋아서 사볼까 하는데."
"......더는 만들 수 없는 귀한 차다. 이름을 굳이 붙이지도 않았지."
"아 자체 블렌딩? 뭐 그런거야? 그럼 어쩔수가 없네."
슈네는 크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더니 마지막으로 카시티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름정도는 붙여줘. <님>은 어때?"
"......썩 가거라."
작은 몸이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카시티브는 찻주전자를 매만졌다. 차가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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