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충동 묘사 주의


오루니는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개찰구를 지나 역에 섰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기억들이 재생된다. 비웃는 목소리, 이것도 못하냐며 호통치는 목소리, 뻔뻔하게 제 몫의 일도 맡기고 가는 동기의 부탁...지긋지긋했다. 내일도 출근해야한다는게 최악이었다.

오루니는 멍한 눈으로 철로를 바라보았다. 저 먼곳에서 마지막 전철이 전조등을 키고 달려오고 있었다.

 - 만약 지금 여기서 떨어지면, 내일부터 출근 안해도 되지 않나?

강렬한 생각은 이윽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루니의 몸을 이끌었다. 그래, 여기서 떨어지면, 저 철로로 떨어지면, 내일부터 출근같은거 안해도 된다. 비틀비틀 지친 발을 이끌고 조금씩 철로에 가까워짐과 동시에, 전조등의 빛이 오루니를 삼키려들었다.

"오, 이런."

뒤로 확 이끌려짐과 동시에 바로 눈 앞에서 전철이 빠른 속도로 진입해온다. 오루니는 꿈에서 깬 듯이 헉 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던거지?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곧 속도를 줄인 전철이 정지하더니 문이 열렸다. 마지막을 알리는 기관사의 방송도 어렴풋하게 들려왔지만, 그보다는 다리의 힘이 먼저 빠졌다. 오루니는 열린 문에 들어갈 생각도 못한채 그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정장 자켓을 입은 팔이 보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어느 사람이 미소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제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일어서실 수 있습니까, 고객님?"

"예, 예에......가, 감사합니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눈 앞의 남자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웃고 있다는 것 정도.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도 오루니는 그 사실을 대충 넘겼다. 어차피 다양한 종족이 모여드는 도시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종족도 있는거 겠지. 눈 앞의 남자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 바닥에 놓았던 가죽으로 싸멘 큰 여행용 트렁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고객님께서 제공해주신 ■■■■은 매우 훌륭한 품질이더군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이 자리에서 지불드리겠습니다. 자, 손을."

"에, 예?"

악수를 해달라는 제스처에 오루니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뭐지? 알 수는 없지만 손을 맞잡은 순간, 무언가가 자신에게서 빠져나감과 동시에 기묘한 힘 같은 것이 제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오루니는 놓아진 제 손을 바라보았다. 뭘까? 의아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든 순간,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뭐에 홀린듯한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즈음 역사 내에 방송이 울려퍼졌다. 금일자 열차 운영 종료 방송이었다.

"아, 내 막차아아아아!!"

당연한 말이지만, 그 날 오루니는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기묘한 만남의 밤 이후, 오루니의 몸과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그는 오랜만에 늦은 아침에 일어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사직서를 하나 챙겨들고 빈 가방과 함께 직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자신의 지각 사실과 옷차림에 시끄럽게 떽떽거리는 상사에 면전에 미리 준비한 사직서를 집어 던지고 책상을 엎어준 후, 제 물건을 챙겨 빠르게 직장을 떠났다.

햇살이 눈부신 오전이었다. 직장과는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며 오루니는 멍하게 생각했다. 대책 없이 굴긴 했지만 마음은 속 시원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면 하나하나 얼굴을 할퀴고 싶은 부서 사람들의 얼굴을 애써 머리 속에서 지우며 오루니는 생각했다.

어젯밤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자칫 최악의 선택을 할뻔한 자신을 잡아주고 사라진 그 사람은 누구일까. 오루니는 어제 악수를 한 손을 바라보았다.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 순간 제 발치의 그림자가 꿀렁이는 것이 보였다. 뭐지? 가만히 보자 그림자가 쑤욱 솟아오르더니 이윽고 형태를 갖췄다. 오루니 자신이었다.

"어, 어어어어?"

시야가 이윽고 뒤바뀌었다. 서 있는 자신이 앉아 있는 멍청한 얼굴을 한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다 다시 서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오루니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문득 머릿속에 어제의 대화가 스쳐지나간다.

 - 고객님께서 제공해주신 ■■■■은 매우 훌륭한 품질이더군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이 자리에서 지불드리겠습니다. 자, 손을.

자신이 무엇을 그에게 제공했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에게 이 기묘한 힘을 준 것이라는 것. 문득 바람에 날려온 전단이 자신과 자신 사이에 떨어졌다. [모습없는 신의 구원과 자비를 간증하다.] 그런 문구가 크게 적혀있는 종교 홍보 전단이었다.

"......아아!"

벼락을 맞은 것 처럼 오루니는 바닥에 떨어진 전단을 집어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구나. 나는, 나는 구원받은 거구나! 신에게 나는 구원을 받은거야!'

오루니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저 멀리 공원 한구석에서 수상한 로브를 입은 자들이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오루니는 재빠르게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부터 그가 해야할일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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